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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유 게시판

최양업 신부님의 여섯 번째 편지 

  • 별빛지기
  • 2019-09-05
  • 898

● 최양업 신부의 여섯 번째 편지 

발신일 : 1849년 5월 12일

발신지 : 상해(上海)

수신인 : 르그레주아 신부

 

“제가 그들 안에 있고 아버지께서 제 안에 계십니다. 이는 그들이 완전히 하나가 되도록 하려는 것입니다.”(요한 17,23) 

 

그리스도 안에 지극히 공경하고 경애하올 르그레주아 신부님께

귀양살이하는 이곳에서 다시 한 번 신부님께 편지를 올립니다. 아직도 우리의 서원과 희망이 이루어지지 않고 있습니다. 언제나 언짢은 소식만 전해드리게 되니, 저로서도 서글프고 이 소식을 들으시는 신부님의 마음도 틀림없이 무거우실 것입니다. 그러나 우리는 하느님의 마음에 드는 것 외에 다른 무엇을 찾아 얻을 수 있겠습니까? 

그러기에 비록 우리의 계획이 성공하지 못했으나 그렇다고 해서 모든 것이 실패했다고 여기지는 않습니다. 우리는 죽어 없어질 터이나 우리 자신을 위해 열망하고 노력하는 것이 아니라 오직 하느님만을 위해 일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하느님께서는 우리의 속마음을 꿰뚫어보시고 우리의 도움이 아쉽지 않은 분입니다. 하느님은 당신의 사랑하시는 아들이고 우리의 구세주이시며 머리이신 주 예수 그리스도의 본을 따라서 우리도 겸손하게 크나큰 고난을 참아 받은 다음에야 열매를 맺도록 미리 정해두셨습니다. 

우리의 기대가 이루어지기를 참고 견디는 것은 잠깐입니다. 그리고 하느님의 자비를 탄원하는 우리의 항구심도 아직 짧습니다.

얼마나 많은 성인들이 단 한 사람의 죄인의 회개나 어떤 특별한 은총을 얻기 위하여 10년, 20년, 30년, 40년 또는 더 오랜 세월 동안 열렬한 기도와 크나큰 희생과 힘들고 지루한 극기와 보속을 하느님께 바치셨습니까? 참으로 이러한 모범을 묵상하는 때에 저는 어떤 정신으로 고무되는지 모르겠습니다. 

아마도 저는 천상의 도움을 애원하는 데에는 너무나 소홀하였고, 인간적 희망에 너무 의존하였으며 또한 무수한 죄를 범하였습니다. 그 때문에 하느님께서는 우리의 기도를 들어주시지 않는 것이라 여겨집니다. 제가 우리에게 오는 하느님의 자비의 길을 가로막고 있는 듯합니다.

지극히 좋으신 하느님, 저의 주님이시여, 만일 제가 당신 분노의 원인이라면, 저를 바닷속 깊이 던져주시고 당신 종들의 참상을 불쌍히 여기소서. 본시 저는 아무것도 아니고 치욕을 당하며 사람들에게 밟히는 것 외에는 아무 가치도 없는 당신의 작품입니다. 저는 당신 안에서라야 겨우 당신의 마음에 드는 일을 하는 체하는 것뿐입니다. 오로지 저에 대한 당신의 지극히 거룩하신 뜻이 제 안에서 저를 통하여 저에게서 이루어지기를 바랄 뿐입니다.

방금 우리는 두 번째 해로(海路) 원정을 시도하였습니다. 지난 1년 내내 아무것도 할 수 없어 허송세월만 하였습니다. 

그런데 재작년에 우리가 파선했던 고군산 섬에 저의 이종사촌 형이 거룻배를 가지고 와서 여름 내내 우리를 기다렸다고 합니다. 라피에르 함장이 조선 정부에 편지를 썼을 때, 그해 안에 반드시 다른 함선들이 그곳에 올 것이라고 거듭거듭 확고하게 다짐하였습니다. 그 소문을 전해들은 우리 신부님들과 신자들은 우리를 마중하기 위하여 사소한 것까지도 챙겨 빈틈없이 대비했던 것입니다. 그들이 얼마나 많은 끔찍한 위험과 곤경을 겪었겠습니까? 

만일 우리 편에서도 좀더 주의를 기울이고 좀 더 현명하였더라면 틀림없이 그것을 알아차리고 미리 대비책을 강구할 수 있었고 또 강구했어야 했을 것입니다. 우리도 라피에르 함장이 그렇게 편지 쓴 것을 알고 있었으니 말입니다. 

그런즉 우리 신부님들이 그런 정보에 따라서 그 기회에 우리를 입국시킬 만반의 준비를 할 것이라는 것을 상당히 쉽게 예견할 수 있었을 것입니다. 그리고 어떤 배를 여기 상해로 인도할 수 있었을 것입니다. 그러나 우리는 미리 서로 연락이 닿지 못했기 이런 것에 대해서 전혀 생각이 미치지 못했었습니다. 여하튼 하느님의 이름은 찬미 받으소서. 

금년에는 양편에서 미리 약속을 하고 마카오의 선박 한 척을 타고 백령도로 향하였습니다. 이곳은 우리의 친애하는 자랑스러운 전우였고 지금은 하느님 아버지 앞에서 우리의 충실한 천상 수호자가 된 김대건 안드레아 신부가 체포되었던 곳입니다. 

계절이 꽤 나쁜 때였으므로 위험과 노고가 없을 수 없었습니다. 사슬이 끊어지고 닻은 잃어버렸으며 선장은 함선 전체를 파선당할까 봐 조바심을 하였습니다. 무진장 애를 쓴 끝에 우리가 그토록 찾고 바라던 포구에 도착하였습니다. 그러나 한 발짝도 상륙하지 못하고 곧 후퇴하여야 했을 때 우리 마음은 얼마나 비통했겠습니까!

우리의 선장은 영국인이 (1816년에) 작성한 해도를 따라서 항해하였습니다. 우리가 그 해도에 그려진 섬을 찾기는 하였으나 그 해도가 정확하지 못하게 그려져 있었던 것입니다. 우리 앞에 처음으로 나타난 섬들 중의 하나는 그 해도에 교도라고 표시되어 있었습니다. 우리가 그 섬으로 내려가서 그곳 주민들에게 그 섬의 이름과 위치를 물어보니 (이름과는) 전혀 다르다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이 섬이 정말 다른 섬이지 또는 섬 주민들이 우리를 빨리 따돌리려고 거짓말을 하는지는 알 수 없었습니다. 

그러나 그곳만이 아니라 그 해도에 백령도라고 적혀 있는 다른 섬에 가보아도 중국 배거나 조선 배거나 아무 배도 보이지 않았습니다. 김 안드레아 신부의 보고에 의하면 이 섬에는 많은 산동(山東) 어부들이 떼를 지어 모이므로 그곳에 가면 어김없이 큰 선단을 만나게 되어 있다고 하였습니다. 그래서 우리는 그곳에서 만나기로 약속했던 것입니다.

하여간 이제 우리는 극도의 궁지에 빠졌습니다. 전혀 알 수 없는 생소한 곳이요 지극히 위험한 곳이었습니다. 닻을 내릴 수도 없고 안내자를 부를 수도 없었습니다. 어떤 조선 사람이라도 외국인이게 심부름을 하기 위하여 접촉하는 것이 엄금되어 있었기 때문입니다. 

우리의 선장은 라피에르 함장이 당했던 것과 같은 운명을 당할까 봐 시시각각으로 조바심을 하고 있었습니다. 우리는 아무런 대책도 없었습니다. 인간의 도움은 더 이상 기대할 수 없었습니다. 우리는 모두 한마음으로 전능하신 하느님과 복되신 동정 마리아와 모든 성인 성녀께 구원을 청했습니다. 우리 모두를 온전히 하느님의 자애로우신 섭리에 맡길 따름이었습니다. 

경황없이 허둥대는 동안에 어느덧 함선은 이 불길한 지역에서 멀어지기 시작하였습니다. 이제 저는 다시 상해의 귀양살이로 되돌아와 있습니다. 

아마 우리를 영접하러 오던 저 가련한 신자들이 포졸들의 손에 붙잡혔을지도 모릅니다. 아마 우리의 포교지 전체가 또다시 박해자들의 참혹한 광란으로 마구 난폭하게 찢겨졌는지도 모릅니다.

 

또 한 가지 심히 우려되는 것이 있습니다. 프랑스 함선이 또다시 나타났기 때문에 조선 정부에서 신자들에게 크게 격분하여 분풀이를 할는지도 모릅니다. 

이때까지는 프랑스인들에 대한 공포 때문에 감히 신자들에게 분노를 터뜨리지 못했습니다. 그러나 그처럼 많은 말로 단단히 약속하고서도, 지난 2년 동안 아무 군함도 조선에 나타나지 않았는데, 이렇게 늦어지는 것에 대해서 프랑스 정부 측에서는 아무런 해명도 없습니다. 또한 이렇게 오랜 시일이 경과하여도 (1847년에 고군산도에서) 파선한 군함들의 잔해들이 물속에서 썩도록 내버려 두고 있습니다. 

이런 것을 볼 때, 조선 정부는 아마 다음과 같이 말할 것입니다. “저 프랑스 놈들은 아무것도 아니다. 괜히 힘이 센 체하고 우쭐대더니 실제는 약속도 못 지키는 자들이다. 입으로는 큰소리 치지만 실제는 아무것도 하지 못한다. 다시는 안 올 것이다. 장차 우리에게 아무 짓도 못할 것이다. 자, 때는 왔다. 천주학쟁이들을 깡그리 박멸하자. 다시는 움트지 못하도록 씨를 말리자. 프랑스 군함을 우리나라에 끌어들인 것이 바로 그자들이다. 우리 가운데서 저들을 치워버려도 우리는 프랑스로부터 아무런 보복도 받지 않을 것이다.” 고 판단할 것입니다. 

전형적 그리스도교 국가인 프랑스는 우리의 어려운 처지를 보고 이미 시작한 좋은 일을 계속하기를 바랍니다. 만일 우리에게 최후의 파멸이 닥쳐온다면 확실히 (프랑스 정부의) 의도에 반대되는 것이지만, 실제로는 (프랑스 정부가 그) 원인이 된 것입니다. (1886년 가서야 조선과 프랑스가 수호조약을 맺었다.) 

우리의 모든 희망이신 자비하신 주님, 우리에게서 재난을 물리쳐주시고 영광스러운 프랑스 공화국에서 치욕을 물리쳐주소서.

금년에 하느님께서 허락하신다면 다시 한 번 육로로 다른 길을 모색해 보겠습니다. 며칠 후 페레올 주교님께서 지시하신대로 요동으로 떠나겠고, 다가오는 겨울에는 변문으로 가겠습니다.  

제가 거룩한 순명을 무시하고, 제 마음대로 하였더라면 저는 벌써 우리 포교지인 조선에 들어가 있거나 그렇지 아니하면 (순교하여) 저 세상에서 우리 신부님들 곁에 있을 것입니다. 그러나 저는 제가 원하는 것이 아니고 다만 하느님께서 원하시는 것과 저의 장상이 명하시는 것만이 이루어지기를 바랄 뿐입니다. 

이만 붓을 놓으면서 다음번 편지는 조선에 들어간 후에야 신부님께 올리기로 다시 한번 약속합니다. 

고마우신 신부님을 통하여 신학교의 모든 신부님들께 특히 우리의 (극동 대표부) 대표이신 바랑 신부님께 우리의 머리이신 예수 그리스도의 지극히 거룩한 늑방 안의 심장으로부터의 순명과 문안 인사를 드립니다.

 

이 자리에서 (강남 대목구장이신) 마레스카(Maresca) 주교님과 예수회 회원 신부님들의 지극히 자상한 보살핌에 대하여 우리 신부님들께 말씀드리겠습니다. 예수회 회원 신부님들께는 제가 아주 오랫동안 체류하면서 융숭한 대접을 받아 많은 신세를 졌습니다. 저 혼자서는 그분들에게 합당한 인사를 드리기에 부족합니다. 경애하올 우리 신부님들께서 저의 가난함을 대신하여 사례하여주십시오. 

저는 사백주일(부활 제2주일, 4월 15일)에 지극히 공경하올 마레스카 주교님께 사제 서품을 받았습니다. 제가 그토록 고귀한 품위에 언제나 합당한 자로 처신하게 되기를 바랍니다. 제 미천함과 연약함을 생각하면 너무나도 크고 도저히 감당할 수 없는 무거운 짐을 짊어지게 된 것입니다. 

그러나 지극히 너그러우신 하느님의 자비로 지극히 무능하고 가난한 제가 날마다 지극히 존엄하신 하느님의 마음에 드는 미사성제를 드리고 온 세상의 이루 다 평가할 수 없는 값진 대가를 날마다 하느님 아버지께 바치는 권능을 수여받았음은 큰 위로입니다.

저에게 주어진 것은 과분한 것입니다. 미사 중에 하느님 앞에서 모든 신부님들과 저의 동료들을 더 자주 더 열렬히 기억하도록 힘쓰겠습니다. 신부님들도 저와 우리 불쌍한 포교지를 위하여 같은 것을 하고 계시고 또 하실 것이라고 믿습니다. 

공경하올 사부님께, 그리스도의 가장 미천한 종이며 신부님의 부당한 아들이고 쓸모없는 조선인 탁덕 최 토마스가 올립니다.